부산 대표음식이 되기까지
돼지국밥은 부산 대표 음식이다. 부산 안보다 밖에서 더 그렇다.
부산소비자연맹의 부산 상품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올해 부산 외 지역 사람들이 뽑은 부산 대표 상품 1위에 올랐다. 부산 사람들은 5년 연속 부산어묵을 1위로 뽑았다. 돼지국밥은 2위였다.
부산을 대표하는 상품은?

부산시민

부산 외 시민

돼지국밥은 이 조사 자체에 올해 첫 등장했다.
부산소비자연맹은 올해부터 조사 대상에 타지 사람들을 새로 추가하면서 예비 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기존 조사에서는 보기에도 없었던 돼지국밥 답변이 많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돼지국밥은 보기 데뷔와 동시에 정상을 꿰차게 됐다.
돈가스집보다 많고 짜장면보다 좋아해
부산 사람에게 돼지국밥은 특산품이라기에는 김치찌개나 백반처럼 너무 익숙한 음식이다.
올 6월 기준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가업소정보에 따르면 부산에서 상호에 '돼지국밥'이 들어간 음식점은 692곳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에 따르면 실제로 돼지국밥을 취급하는 식당은 742곳에 이른다). 돈가스전문점(365곳)의 배 정도, 스파게티전문점(54곳)의 13배 정도 된다. 서울 전체 설렁탕집(639곳)보다도 많다.
부산에 돼지국밥(상호) 식당은 692곳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가업소정보(2019년 6월 기준)

  1. 돼지국밥 692

  2. 돈가스 365

  3. 일식초밥전문 360

  4. 설렁탕집 187

  5. 파스타전문점 54

부산에 돼지국밥(판매) 식당은 742곳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2019년 10월 기준)

돼지국밥이 부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전국의 '돼지국밥' 상호 식당은 2703곳, 이 중 88%가 부산을 포함한 영남 지역에 있다. 경남(923곳)이 가장 많고, 부산 다음으로는 대구(272곳), 경북(262곳), 울산(240곳) 순이다. 부산은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그래도 부산의 돼지국밥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구글트렌드는 2004년 이후 두 개 이상 검색어의 검색량 비율을 지역별로 제공한다. 대중적인 음식의 대명사인 짜장면과 돼지국밥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전국 추이에서 돼지국밥은 단 한 번도 짜장면을 추월한 적이 없다. 부산은 예외다. 부산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60 대 40의 비율로 돼지국밥을 짜장면보다 많이 검색했다.
돼지국밥 vs 짜장면, 무엇을 더 검색했나

짜장면 돼지국밥

*구글 트렌드(2004년 이후)

'부산돼지국밥'의 탄생과 확산
'부산돼지국밥'의 탄생 토양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시절 부산이다.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이전에도 있었다. 밀양에는 1940년대부터 영업 중인 돼지국밥 식당들이 있다. 그러나 '부산돼지국밥'을 말하려면 전쟁과 이북 피란민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출처 : 부산일보 DB> 1952년 부산 동구 좌천동 인근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피란민들이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평양 출신 고 최순복 씨는 1956년 범일동 옛 삼화고무 공장 앞에서 할매국밥을 시작했다. 서혜자(79) 씨는 1969년 국제시장에서 "순대국밥 하던 이북 할머니"를 어깨 너머 보고 신창국밥을 열었다. 지금은 폐업한 하동집(1952년 개업)도 창업주가 평양 출신 친구에게 순대를 배운 경우다. 1938년 밥집으로 시작한 영도소문난돼지국밥의 2대 사장 김현숙(85) 씨는 "이북 피란민 손님들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이후 돼지국밥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시장과 교통 요지를 거점으로 퍼져나갔다. 피란민이 생필품을 거래하던 부평 깡통시장(양산집, 밀양집), 도매시장과 버스터미널이 있던 조방 앞(마산식당, 합천식당)의 노포들이 1960년대 들어섰다.
서면시장 국밥골목의 송정삼대국밥(1946년), 경주박가국밥(1954년)도 1960년대 시장 형성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지자체의 명명과 언론의 호명
돼지국밥을 부산음식으로 처음 명명한 건 지자체다. 부산시는 2009년 돼지국밥을 포함한 향토음식 13종을 발표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99년부터 순차적으로 연구 발굴 사업을 진행한 결과였다. 2004년 한국관광공사가 분류한 부산향토음식에는 돼지국밥은 없었다.

부산시 지정 향토음식 13종 (연구용역순)

연도 향토음식점
1999 생선회 · 동래파전 · 흑염소불고기
2000 복어요리 · 곰장어요리
2001 아귀찜 · 재첩국 · 낙지볶음
2006 밀면 · 장어요리(붕장어)
2007 돼지국밥 · 붕어찜

부산일보 2002년 3월 '오래된 맛집' 코너의 하동집(왼쪽) | 2006년 10월 주말판 '줄서는 맛집' 편에 소개된 쌍둥이돼지국밥(오른쪽).

"부산의 돼지국밥은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고유의 향토음식이라기보다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 토대 위에서 탄생하고 각 지역 국밥과 혼합된 국밥으로 보인다."
김상애 당시 신라대 교수는 시 연구용역 결과에서 '부산돼지국밥'을 이렇게 요약했다.
<부산일보>에서 '돼지국밥'은 1990년대만 해도 식당 개업이나 사건 기사에서 등장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주말 섹션을 중심으로 지역성을 강조한 돼지국밥 기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주 5일제 확산과 '맛집' 기사의 트렌드를 탔다. 조방 앞과 서면시장 돼지국밥 골목, '줄서는 집' 쌍둥이돼지국밥 등이 이 때 소개됐다.
돌고 돌아 스토리텔링의 힘
전국적으로 '부산돼지국밥'의 인식을 굳힌 건 대중문화의 스토리텔링이다. 2006년 허영만의 요리 만화 <식객> 15권 은 돼지국밥을 "부산 사람에게 향수 같은 음식",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으로 소개했다. 만화에 묘사된 마산식당은 단숨에 유명해졌다.
2013년 12월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특히 파급력이 컸다.
영화는 속물 변호사가 단골 돼지국밥집 아들의 시국 사건을 계기로 거리의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 부림 사건이라는 실화의 힘을 업고 부산돼지국밥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출처 : 부산일보 DB> 허영만 화백과 돼지국밥(왼쪽) | 영화 '변호인' 포스터(오른쪽).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는 <한식의 탄생>에서 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돼지국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변화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영화 속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나도 '변호인'의 주인공처럼 돼지국밥을 먹을 때마다 몸이 아니라 영혼이 성장할 가능성을 봤다."

해운대구 양산왕돼지국밥의 이태수(58) 사장은 "'변호인' 이후에 타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돼지국밥이 부산 대표 음식이라는 이미지도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이듬해 개봉한 또 다른 부산 무대 영화 '국제시장'도 힘을 보탰다. 부평깡통시장 양산집의 3대 사장 노치권(32) 씨는 이맘때 "시행착오 끝에 옛 맛을 복원하고 나서 밀려드는 관광객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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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돼지국밥
정치인은 국밥을 좋아한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에 국밥만한 게 없다. 부산이라면 돼지국밥이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먹은 일로 가장 많이 보도된 정치인은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2015년 6월 당시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부산 한 돼지국밥집에 가족을 데리고 가 국밥을 비웠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로서 과도한 '메르스 공포'를 진화한다는 취지였지만 '보여주기식' 정치라는 비판도 나왔다.

<출처 : 부산일보 DB> 2015년 6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부산 돼지국밥 식당을 찾은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 시절인 2014년 1월 영화 '변호인' 속 부림 사건의 피해자들과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서면에서 돼지국밥 뒤풀이도 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영화 속 국밥집 아들의 실제 모델 송병곤 씨는 그 해 6월 지방선거에 '영화 '변호인' 속 국밥집 아들'이라는 구호를 달고 시의원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인 2018년 3월에도 부산항 행사에 참석해 항만 노동자들과 돼지국밥으로 오찬을 하고 "돼지국밥은 부산이 제일"이라고 말했다. 2014년 의원 시절에는 트위터에 지역구인 사상구 돼지국밥 지도를 공유하며 부산돼지국밥 전도사를 자처한 일도 있다.

<출처 : 문재인대통령 트위터> 문재인 대통령이 2014년 12월 트위터에 올린 당시 지역구 사상구 돼지국밥 식당 지도.

부산 출신인 안철수 전 의원도 2012년 대선 당시부터 부산에 올 때는 돼지국밥 식당을 자주 찾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 울산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울산 신정시장의 돼지국밥 식당을 방문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