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돼지국밥은 없다
부산돼지국밥은 다 똑같지 않다.
겉모양도 그렇지만 재료, 조리 방법, 찬의 종류, 먹는 방법까지 조합한다면 돼지국밥은 먹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합천식당 백지원(28) 씨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어릴 때부터 새우젓만 넣고 먹는 걸 가장 좋아했다고 말했다. 송정삼대국밥 김기훈 씨는 “국밥 고수가 될수록 (국밥을 즐기는) 300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는 말로 부산돼지국밥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부산돼지국밥 CHECK LIST
뼈와 고기, 물, 불의 조합
돼지국밥은 외양상 크게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로 나뉜다.
국물을 내는 재료는 뼈와 고기다. 보통 뼈를 오래 삶을수록 뽀얗고 고기를 삶은 국물은 맑다. 식당마다 뼈와 고기를 넣는 비율과 순서, 끓이는 시간에 따라 국물의 색과 농도가 다르다. 뼈를 고면서 고기를 수시로 삶아 내거나 한 국물에 뼈와 고기를 번갈아 삶거나 처음부터 뼈와 고기를 따로 삶기도 한다. 뼈를 쓰지 않고 고기로만 국물을 내는 곳도 있다.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의 경계는 칼로 긋듯 뚜렷하지는 않다.
심지어 한 식당이라도 언제 어느 시간대에 가느냐에 따라 국물의 농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합천일류돼지국밥(괘법동) 박지영(41) 씨는 “손님들이 선호하는 국물 트렌드가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 사이에서 미세하게 오가기 때문에 2~3년마다 뼈와 고기의 비율을 달리 하면서 레시피도 바꾼다”며 “하루 중에도 밤에는 취객이나 야근 손님을 위해 진한 국물을, 낮에는 좀 더 맑은 국물을 내는 식으로 손님의 입맛에 따라 국물을 다르게 낸다”고 말했다.

뼈는 사골이라 부르는 다리뼈를 대부분 쓴다. 넓적다리뼈, 무릎뼈, 종아리뼈로 이어지는 부위다. 민아식당(중앙동)은 등뼈 위주로 곤다. 엄용백돼지국밥(광안동)의 ‘진한 밀양식 돼지국밥’은 4가지 부위 뼈를 쓴다. 엄수용(37) 사장은 “사골은 구수한 맛, 목뼈와 등뼈는 시원한 맛, 족은 감칠맛을 내는데 4가지 배합 비율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말했다.

고기 부위별로 보면 국밥에는 앞다리살과 목살 살코기, 수육에는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나 항정살을 쓰는 곳이 가장 많다. 수영공원돼지국밥을 비롯한 가야공원로 식당은 대부분 국밥에도 항정살을 넣는다. 할매국밥(범일동)은 국밥과 수육 모두 삼겹살을 쓴다. 엄용백돼지국밥은 좀 더 세분화했다. 일반 국밥에는 토시살, 다리살을 넣고, 2000원 더 비싼 극상 국밥에는 여기에 항정살, 가브리살과 내장에 속하는 오소리감투를 추가한다.

돼지머리 국밥은 또 하나의 카테고리다. 머리뼈와 붙은 고기를 같이 삶으면 국물은 누르스름하게 진해지거나(수정동 88수육, 부평동 양산집), 뽀얘지다가 살짝 투명해진다(부평동 밀양집). 밀양집 정정아(51) 씨는 “뼈 맛이 고기에 배면서 간을 한 것처럼 깊은 맛이 나서 손님들이 다른 집 국밥은 싱거워서 못 먹겠더라고 한다”고 말했다. 머릿고기도 부위가 다양해서 양산집에는 살코기국밥과 비계국밥이 따로 있다.

https://youtu.be/7RGJg_M3fLM

밥을 말지 않은 토렴도 있다
조리 방법은 토렴과 직화로 나눌 수 있다. 토렴은 밥이나 고기를 담고 솥의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라내면서 데워 내는 것을 말한다. 직화는 뚝배기째 팔팔 끓여서 내는 것이다. 부산돼지국밥 로드의 식당 30곳을 분류하면 20곳이 토렴을 하고, 9곳은 가스불에 끓여 낸다. 본전돼지국밥(초량동)은 토렴도 직화도 하지 않고 뜨겁게 데운 뚝배기에 국물과 고기를 담아서 낸다.
합천식당의 국밥 사진과 장가네돼지국밥 사진

토렴을 통해 80도 안팎 온도로 나오는 합천식당(왼쪽)과 가스불에 팔팔 끓여주는 장가네돼지국밥.

‘밥을 말아주는 곳=토렴’ 공식은 흔한 오해다.

30곳을 다시 밥을 말아주는 곳과 따로 내는 곳으로 구분하면 17곳이 둘 다를, 12곳이 따로국밥만 판다. 대부분 따로국밥이 1000원 더 비싸지만 양산국밥(중동)은 특이하게 토렴국밥을 1000원 더 비싸게 받는다. 토렴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다. 밥을 말아주는 국밥만 있는 곳은 엄용백돼지국밥 1곳뿐이다. 밥을 말아주지만 직화 방식을 쓰거나 따로국밥이지만 고기 토렴을 하는 곳이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송정삼대국밥(부전동), 영진돼지국밥(신평동), 합천국밥집(용호동) 등 5곳은 따로국밥만 팔지만 고기 토렴을 한다.
양산국밥의 따로국밥과 토렴국밥 사진

양산국밥의 따로국밥(왼쪽)과 토렴국밥. 특이하게 토렴국밥이 1000원 더 비싸다.

과거에는 국밥 하면 무조건 토렴이었다. 보온시설 없이 가마솥만 걸고 국밥을 팔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직화로의 변화는 뚜렷하다. 보온밥통이나 온장고가 생겼고, 무거운 뚝배기를 10~20회 이상 기울여야 하는 노동력을 대규모 가스 설비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토렴국솥에 국물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비위생적이라고 여기거나 남은 밥을 말아 준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돼지국밥 노포들은 하나같이 토렴이 맛을 위해서는 최적의 조리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김 식힌 밥과 썰어둔 고기에 뜨거운 육수를 10~20회 끼얹는 동안 국밥의 온도는 80도 안팎이 된다. 문숙희 경남정보대 식품영양과 교수에 따르면 뜨거운 국물 음식은 특히 짠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간이 세지기 쉽다. 식도암이나 위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토렴 애호가들은 뜨거운 밥을 바로 마는 것과 달리 밥을 토렴하면 밥알을 씹는 식감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다 먹어갈 때쯤이면 육수에 밥물이 배어나와 구수한 맛을 낸다고 강조한다. 손님 입장에서는 식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받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고 가게 입장에서는 회전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노포들도 시대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1968년 개업한 마산식당(범천동)이 올 1월, 1954년 본점에서 시작한 경주박가국밥 토곡점이 지난해 8월부터 메뉴에서 밥을 말아서 내는 토렴국밥을 없애고 직화 따로국밥으로 통일했다. 두 식당은 모두 “맛은 토렴국밥이 더 좋지만 손님의 취향이 밥을 따로 주거나 뜨겁게 주길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서 고민 끝에 토렴의 전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반면 합천일류돼지국밥은 2003년 개업 이래로 토렴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손님의 수요다. 상권이 다른 만큼 손님의 선호도 다르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박지영 사장은 “맛도 좋거니와 우리 손님들이 대부분 30분 이내로 모든 식사를 마치길 원하기 때문에 바로 먹기 좋은 온도의 토렴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곳은 밥을 말아주는 국밥과 따로국밥의 가격이 같지만 따로국밥 주문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취향 따라 즐기는 부산돼지국밥
다진 양념은 대개 고춧가루에 파, 마늘, 양파, 간장이나 젓국을 섞어 만든다. 이 중 식당마다 된장(수안동 재민국밥), 간 양파(영진돼지국밥), 간 마늘(합천일류돼지국밥)처럼 두드러지는 재료들이 돼지 육수와 어우러져 제각기 독특한 맛을 낸다. 30곳 중에는 없지만 안락동 또랑돼지국밥은 파를 삭힌 양념으로 유명하다.
재민국밥, 영진돼지국밥, 합천일류돼지국밥의 사진. 세 개의 국밥 모두 위에 양념이 올려져 있다.
양념은 주방에서 미리 국밥에 넣어서 내는 곳이 많지만 취향대로 넣을 수 있게 양념통을 따로 두는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다. 부산돼지국밥 로드 30곳 식당 중에는 10곳이 먹는 사람이 덜어서 넣을 수 있게 한다. 양념을 넣어서 내는 식당들도 대부분 먹는 사람이 양념을 풀기 전에 일정량을 미리 덜어내는 방법으로 간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돼지국밥은 먹는 사람이 다진 양념 외에도 새우젓, 부추무침 등을 원하는 대로 넣어 간과 맛을 조절할 수 있는 음식이다. 늘해랑(연산동) 2대 경영인 오현정(37) 씨는 “손님에 따라 새우젓만 넣거나 후추를 많이 넣거나 김치 국물이나 파, 잘게 썬 땡초를 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돼지국밥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돼지국밥을 다른 지역 돼지국밥과 구별하게 하는 부추, 사투리로 정구지도 모두 같지 않다. 대부분 식당은 국밥에 자른 부추를 넣어서 내고, 별도 반찬으로도 젓국으로 무친 부추 겉절이를 내서 국밥에 넣어 먹도록 권한다. 하지만 겉절이 대신에 부추김치(중동 형제전통돼지국밥, 민아식당, 밀양집)나 생부추(88수육)를 주는 곳도 있다. 늘해랑은 간장을 기본으로 한 특제 양념으로 부추를 무치는데, 국밥에 넣기보다 따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민아식당은 국밥에 부추 대신 방앗잎을 넣어서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계절에 따라 쑥갓을 넣기도 한다. 밀양집은 계절에 따라 부추 겉절이 대신 동초 겉절이를 반찬으로 낸다.

반찬은 배추김치 또는 깍두기 김치 종류에 고추+양파+마늘 조합이 기본이다. 소문난돼지국밥(부평동)과 쌍둥이돼지 국밥(대연동)은 생양파 대신 양파 장아찌를 준다.
국밥 식당이 반찬 그릇에 담아 제공하는 소면은 1906~70년대 국가 주도로 진행된 혼분식장려운동의 흔적이다.
정부는 1969년 모든 음식점에서 보리나 밀가루를 25% 이상 혼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고시했다. 위반한 음식점은 단속해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소면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이 국밥집에서 배를 불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부평깡통시장 소문난돼지국밥 이동주(66) 씨는 “80년대 초량동에서 돼지국밥 식당을 할 때 2000원 하는 국밥 한 그릇을 시켜서 밥 한 그릇에 소면을 더 달 라고 해서 배를 채우는 손님들로 꽤 인기를 끌었다”고 기억했다. 지금은 부산돼지국밥 로드 30곳 식당 중 10곳이 소면을 제공한다.

송정삼대국밥과 합천국밥집(용호동)은 돼지국밥만 시켜도 고기용 소스를 같이 준다. 국밥 속의 고기를 그냥 건져 먹거나 국물과 같이 먹는 대신 소스에 찍어서 고기 자체로도 즐길 수 있다. 나머지 식당들은 수육백반을 시키면 준다. 경주박가국밥 토곡점은 12가지 재료를 배합해 만든 특제 소스를 비법으로 꼽는다.
국밥가게의 메뉴판 사진. 메뉴와 가격이 표기되어 있다.

수영공원돼지국밥의 세분화된 메뉴판.

돼지국밥 외에 다른 추가 메뉴들도 식당마다 다르다.
대부분 식당이 순대국밥과 내장국밥을 함께 팔고, 선호 부위에 따라 고기+순대, 고기+내장, 순대+내장, 고기+순대+내장의 조합을 고를 수도 있다. 삶은 고기와 고기 없는 육수, 밥을 따로 주는 수육백반도 돼지국밥 식당의 필수 메뉴다. 수육에 곁들이는 음식은 두부김치(신평동 영진돼지국밥), 가오리식해(늘해랑), 보쌈 김치(장전동 장가네돼지국밥) 등으로 나뉜다. 부산돼지국밥 로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대신동의 노포 마산집돼지국밥은 갈비살로 만드는 갈비수육으로 유명하다.

돼지육수에 밥 대신 면을 말아주는 메뉴도 별미다. 합천일류돼지국밥, 제주할매순대국밥(남항동)은 돼지우동을, 할매국밥(범일동), 마산식당(범천동), 영도소문난돼지국밥(대교동)은 돼지국수를 판다. 초량동 평산옥은 수육과 돼지국수 단 두 가지 메뉴로 사랑받고 있는 노포다.

이외에도 내장탕(88수육), 버섯순대전골(경주박가국밥 토곡점) 같은 탕 메뉴나 술국(용호동 개미식당)은 술 안주용이다. 개미식당은 선지도 판다. 밀양집, 양산집과 제주할매순대국밥에서는 눌린 고기(편육)도 찾아볼 수 있다. 민아식당는 특이하게 돼지국밥과 수육백반, 그리고 삼겹살 이렇게 딱 세 가지 메뉴만 팔고 있다.

가족 단위 외식이 늘면서 어린이 메뉴를 두는 곳도 생겨났다. 양산국밥은 유아식사(3000원)를 따로 파는데, 어린이용 수저를 씻어서 내기 바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합천일류돼지국밥, 수영공원돼지국밥(가야동)에도 어린이 메뉴가 따로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Another Story
나만의"최애"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TV에 나온 곳에 가봤으니 끝이라고?
돼지국밥 좀 먹어본 사람들에게 물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지극히 개인적인 부산돼지국밥의 목록.

1. 나만의 '최애' (최대 3개)
2. 잊지 못할 경험

최원준
최원준#시인 #음식문화 칼럼니트스 #동의대 평생교육원 교수
  • 평산옥(초량동) 수육과 맑은 국물 돼지국수 한 접시. 면을 좋아한다면. 대건명가돼지국밥(초량동) 사골 국물이 좋다.
  • 주머니는 가볍고 배는 고프던 대학생~직장 초년병 시절. 서면시장에서 돈이 없으면 칼국수, 돈이 좀 있는 날에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박명재
박명재#부산푸드필름페스타 #프로그램 디렉터
  • 양산국밥(중동) 학창시절 돼지국밥에 입문하게 해 준 곳. 자매국밥(민락동) 정석에서 비켜난 변종의 맛과 친절한 여사장님. 합천국밥집(용호동) 돼지국밥의 첫 문턱을 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 중학생 때 늘 바쁘던 아버지와 처음 단둘이 돼지국밥을 먹은 날. 둘만 있는 시간이 어색했고 돼지 냄새가 싫었다. 지금은 아버지랑 가는 것도 내가 아버지가 되어 아이와 단둘이 가는 것도 좋아한다.
김영제
김영제#트위터 ‘돼지국밥초록’ @pigsoup_chorok 계정 운영
  • 밀양집(부평동) 투박한 ‘야성’이 살아 있다. 할매국밥(범일동) 차원이 다른 담백한 국물. 이 맛이 밍밍하다는 사람과는 겸상을 거부한다. 개미식당(용호동) 가성비 넘버원.
  • 돼지국밥 방문기 트위터 계정을 막 시작하고 소문난돼지국밥(당감동)과 할매국밥을 차례로 찾았을 때. 후추를 듬뿍 넣은 갈색 매운 국물과 고춧가루를 띄운 맑고 담백한 국물의 대비에 충격을 받고 다양한 돼지국밥의 매력에 빠졌다.
지우준
지우준#유튜브 부산 맛집 채널 ‘사먹사전’ 운영 #대학생
  • 키다리돼지국밥(하단동) 가까워서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다. 만화 〈식객〉의 ‘반항아’ 같은 맛. 영진돼지국밥(신평동) 수육백반 먹으러. 진미돼지국밥(부평동) 여러 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사장님의 내공.
  • 고등학교 시절 교복 차림으로 저녁 급식 대신 몰래 나와 친구들과 먹던 대신동 남해식당. 학생 요금 3500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박종호
박종호#<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을 맛보다〉 저자
  • 서면포항돼지국밥(부전동) 접근성과 적당히 보편적인 맛. 합천식당(범천동) 사무실에서 가기 좋고 국물의 농도와 점도가 취향에 맞는다.
  • 돼지국밥 식당을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를 위해 비오는 날 서면포항돼지국밥에서 2인분을 포장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가서 차려냈던 일. 아내도 맛있게 먹어줬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