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돼지국밥의 미래
부산돼지국밥은 지역 음식인 동시에 자영업이자 외식 전문점의 세부 업종이다.
이 세 가지 영역을 함께 보아야 부산돼지국밥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다. 부산돼지국밥은 다양성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또 확장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자영업으로
부산의 ‘돼지국밥’ 상호 식당은 올 9월 기준 692곳으로 4년 전(572곳)보다 20%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음식숙박업 신생기업의 5년 생존율(18.9%)을 고려하면 새로 생긴 10곳 중 8곳은 5년도 못 버티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부산 돼지국밥 식당 컨설팅해보니

(2015년 부산시 찾아가는 식품 안전 컨설팅 사업)

진단"국내산 돼지고기 원가 비중(약 50~55%) 높아 수익 낮고 육수와 고기 삶는 국솥을 같이 써서 진한 육수 내기 어려움"

결과"오피스 상권 저녁 고객 증대 위한 술 안주 메뉴 개발하고 육수 조리용과 고기 삶는 용도 국솥 별도 설비를 권고함"

진단"인터넷이나 맛집 시식 통해 조리법 배워 자신감이 없고 조리과정과 작업동선이 복잡해 연료와 식재료 소모가 많음"

결과"맛 수준을 끌어올리고 재료비와 가스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현장 방문을 통해 육수 고는 방법을 직접 전수함"



부산시는 2015년 돼지국밥 식당 60곳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식품 안전 컨설팅 사업’을 진행했다. 여기에서 지속 가능성을 위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장 전문가로 컨설팅에 참가한 경주박가국밥 박주호 씨, 합천일류돼지국밥 박지영 씨 등은 육수를 내고 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경영 분야 컨설팅을 함께한 김사업 BS외식경영연구소장은 솥이나 화구 등 주방 설비와 동선의 비효율성을 주로 지적했다.

진단된 문제들은 대부분 체계적인 조리법 교육이나 맞춤 설비 없는 창업 때문에 일어난다. 그 결과 우선 맛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재료비나 연료비가 더 든다. 인건비도 상승한다.

엄용백돼지국밥 엄수용 사장(가운데)이 부산 젊은 셰프 모임 동료들과 지난해 6월 개업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 엄용백돼지국밥 제공

엄용백돼지국밥 엄수용(37) 씨는 2018년 개업에 앞서 돼지국밥이 서민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최적의 재료와 조리법을 찾아 주방을 효율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그는 부산 젊은 셰프 모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댔다. 압력밥솥과 육절기를 이용하고, 국밥 고기 부위를 세분화하고, 별도 솥과 채반으로 토렴을 하는 방식이 이렇게 나왔다.

부평깡통시장 양산집의 노치권(32) 씨는 2017년에 오후 3~5시 브레이크타임을 신설하고 올 7월 월 2회 휴무도 도입했다. 노 씨는 “당장 매출보다도 직원 손님 모두 즐겁게 롱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부산돼지국밥 로드 30곳 식당은 하루 평균 13.7시간을 영업하고 휴무일은 4주 기준 1.4일에 불과하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외식업으로
“부산돼지국밥은 여러 지역 음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만큼 다양하게 변주되고 분화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방향으로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동의대 평생교육원 교수)은 이렇게 말한다.

프랜차이즈는 변화의 한 형태다. ㈜행운식품은 2005년 목촌돼지국밥 체인 사업을 시작해 부산 경남에 80개 매장을 냈다. 전판현 대표는 "돼지국밥은 원가가 높고 시간대에 따라 국물 농도가 들쑥날쑥하기 쉬운데 육가공 유통망과 표준화된 육수 원액 제공으로 맛과 조리 과정을 시스템화했다"고 말했다. ㈜더도이종가집도 2010년부터 특제 곡류 분말과 세세한 조리법 가이드로 부산 경남에 12개까지 매장을 늘렸다.

젊은 경영인을 중심으로 음식을 넘어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양산국밥은 2대 김성운(31) 씨가 합류하며 뉴욕의 레스토랑을 벤치마킹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싹 바꿨다. 뚝배기 대신 놋그릇을 도입했고 위스키 잔술도 판다. 양산국밥은 연내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도 입점한다.

부산 해운대구 양산국밥 전경과 매장 가운데 마련된 위스키 잔술 판매대.

토렴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이 필요한 갈래일 수 있다. 고기 토렴을 고수하는 합천국밥집 천병철(61) 씨는 “고된 수작업이지만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식인 만큼 토렴이 대부분 없어진 미래에는 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학원까지 나온 아들에게도 물려받아서 해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을 맛보다〉의 저자인 박종호 〈부산일보〉 논설위원은 토렴을 콘텐츠화하는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일본 후쿠오카의 라멘집 ‘멘게키조’는 극장식 주방에서 제면 과정을 보여 주는데, 토렴 또한 위생에 대한 우려만 해결된다면 희귀하면서 의미 있는 볼거리로 부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확장 가능한 지역 음식으로
부산돼지국밥은 이미 부산을 넘어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2014년 내외국인 각 2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부산관광실태조사에서 돼지국밥은 내국인(31.5%)과 외국인(33.1%) 관광객 모두에게 먹어본 음식 중 추천 1순위로 꼽혔다.
부산에서 맛본 특색 음식추천 1위
국적별 돼지국밥 추천 1위 비율은
쌍둥이돼지국밥에는 올 2월부터 동남아에서 주 2회 단체 관광객이 온다. 태종대-송도-이기대-용궁사-송정 관광코스 사이에 쌍둥이돼지국밥이 포함된 형태다. 봄·가을에는 전국에서 수학여행 단체손님도 꾸준히 들른다.

부산돼지국밥이 직면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식문화의 변화다. 밥+국+반찬의 전통적인 한식 상차림 선호는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배달 중심의 외식업 재편, 좋은 재료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를 비롯한 윤리적인 소비 트렌드도 영세한 식당들에게는 버거운 과제다.

부산 기장군 조방국밥의 배달 대행앱 '배달의 민족' 메뉴 화면과 리뷰 화면.

기장군에서 27년째 영업 중인 조방국밥은 신규 10~20대 고객을 잡기 위해 올 9월 대행앱 배달을 시작했다. 2대 경영자 양홍전(33) 씨는 “젊은 층이 자극적인 음식 대신 담백한 한식을 찾게 될 때를 대비해 일단 돼지국밥의 매력을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재료의 고급화는 상당히 진행됐다. 부경양돈농협 관계자는 “삼겹살이나 항정살 국밥을 내고 냉장육, 더 나아가 브랜드육을 찾는 돼지국밥 식당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광화문국밥과 옥동식이 국내에서 일반적인 삼원교잡종 돼지 대신 두록이나 버크셔 품종을 쓰는 이른바 ‘서울식 돼지국밥’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두 식당은 모두 미식 평가 책자로 정평난 〈미슐랭 가이드〉 서울편 빕구르망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국밥의 돼지국밥. 이른바 '서울식 돼지국밥'으로 불린다.

김태경 식육마케터는 “돼지고기 소비 패턴이 축제식 삼겹살 구이에서 식사용 음식으로 옮겨가고 있고, 젊은 층은 타지 중장년층이 흔히 갖고 있던 돼지국밥에 대한 편견도 없다”며 “레시피를 체계화하고 매장 접근성을 높인다면 일본의 대형 규동 프랜차이즈 요시노야처럼 시장성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Another Story
해외에도 돼지국밥이?

배우 강동원(맨 오른쪽)이 미국 LA 숙소에서 포장해온 돼지국밥을 먹고 있다. 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배우 강동원은 올 6월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돼지국밥 ‘먹방’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영화 촬영을 위해 머물던 미국 LA 숙소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포장해 온 돼지국밥을 국물까지 들이켜는 모습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강동원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돼지국밥을 여러 차례 꼽았다. 강동원이 다녀간 곳으로 알려진 진솔국밥은 LA에서 2호점까지 내고 돼지국밥, 비빔당면 등을 판다.

미주와 동남아 한인촌에는 돼지국밥 식당이 여럿 있다. 보통 한식당 콘셉트로 삼겹살이나 냉면 등을 같이 판다.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사는 김지연(40) 씨는 “정작 부산에서는 별로 즐기지 않던 돼지국밥을 애틀란타 ‘돈수백’에서 먹어 보고 좋아하게 됐다”며 “식당에서는 현지인도 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 민락동에 2011년 개업한 수변최고돼지국밥은 2017년 베트남 하노이에도 가게를 냈다. 한식을 찾는 주재원이 주 고객이다. 접근성이 썩 좋지 않은 곳인데도 손님들이 꽤 찾아온다. 김을순(61) 씨는 “하노이 추가 지점을 포함해 다낭, 호찌민에도 확장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행운식품의 부산돼지국밥 프랜차이즈 목촌돼지국밥은 지난해 7월 중국 진출 협약을 맺고 옌청과 선양, 난징에 3호까지 가맹점을 냈다. 기술과 역량을 이전해 주고 로열티를 받는 방식이다. 전판현 대표는 “담백한 돼지고기 요리로 현지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